이른바 ‘검언 유착’ 의혹으로 인해 검찰개혁이 또다시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검언 유착의 한쪽 당사자라는 의혹을 받는 한동훈 검사장(왼쪽 앞)이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있던 지난 1월2일 대검 신년다짐회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입장을 바라보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여권 유력 인사인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신라젠 주가조작 사건’ 가담 혐의로 엮어 넣기 위해서 이동재 전 <채널에이(A)> 기자가 검찰총장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한동훈 검사장(법무연수원 연구위원)과 공모했다는 ‘검언 유착’ 의혹이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이 전 기자가 이미 ‘신라젠 주가조작’ 혐의 등으로 구속 수감중인 이철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를 상대로 ‘유시민 이사장이 신라젠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진술을 하지 않으면 검찰이 이 대표의 가족과 지인 등을 대상으로 먼지털기식 수사를 해 못 견디게 할 것이라는 협박을 했다는 것이 의혹의 골자다. 특히 그 시기가 지난 국회의원 총선거 직전이어서 유력 언론인과 고위 검찰 간부가 선거에 영향을 끼치려 했다는 해석도 뒤따랐다. 반면에, 이미 구속된 이 전 기자 쪽에서는 단독 특종 취재 욕심에 한 검사장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이지 한 검사장과의 공모는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한국방송>(KBS) 등이 한 검사장과 이 기자의 대화 녹취록 등 수사 기밀자료를 입수한 뒤 이를 왜곡해 보도했다는 또다른 ‘검언 유착’ 의혹도 역으로 제기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검찰 내 친검찰총장 세력과 친법무장관 세력이 서로 다른 언론과 유착해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공작’을 벌이고 있다는 주장이 부딪치고 있는 것이다. 진실은 결국 드러나게 될 것이다. 다만 어떤 쪽이 진실이든 (혹은 두 주장 모두 진실이거나, 두 주장 모두 진실이 아니거나) 검찰이 국정과 정치를 좌우하고 나라를 뒤흔든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다.
친검찰 권력에는 충성 비단 이번 신라젠 의혹만이 아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논란, 윤석열 검찰총장 아내와 장모 관련 의혹, 나경원 전 원내대표 자녀 관련 논란, 한명숙 전 총리 사건 조작 의혹, 김성태 전 원내대표 자녀 채용비리 수사,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수사,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논란…. 끝없이 대한민국 정치와 사회는 검찰이 수사의 칼날을 누구에게 겨누느냐 혹은 겨누지 않느냐에 따라 출렁이고 휘청였다. 때로는 그 칼날이 얼마나 날카로우냐에 따라 정치와 사회의 진로와 방향이 바뀌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의혹’처럼 동일한 의혹과 혐의, 같은 정황과 증거가 있어도 정권을 누가 차지하고 있느냐에 따라 검찰의 수사 여부와 의지가 달라지는 진풍경도 종종 목격되곤 했다. 이명박 정권 시절 검찰은 광우병 보도와 관련한 <문화방송>(MBC) <피디수첩>에 대한 무리하고 가혹한 수사와 기소,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에 대한 억지 수사와 기소, 청와대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한 외면 등을 통해 지켜보는 국민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2012년 말 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발생한 국정원의 선거개입 여론 조작 의혹 사건, 김학의 전 법무차관 성범죄 혐의 사건,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 간첩 조작 사건 등 검찰의 ‘권력의 시녀’ 역할은 계속됐다. 정치권도 ‘검찰이 좌우하는 정치’를 현실로 받아들여 툭하면 상대방을 검찰에 고소하는 ‘검찰 정치’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일하는 국회’를 표방한 21대 국회도 검찰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을 누가 차지하느냐를 두고 지루한 샅바싸움을 벌였다. 검찰은 검찰대로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 과거에 ‘살아 있는 권력엔 엎드리고, 죽은 권력엔 잔혹하다’는 비판에 대한 반성으로 살아 있는 권력과 관련된 의혹을 주저하지 않고 열심히 수사했더니 이제는 ‘검찰 쿠데타’라고 비난한다는 불만이다. 이런 검찰의 볼멘소리에 강한 반론도 제시된다. ‘과연 현 정권이 검찰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하지 않았어도 여권 인사들에 대한 무리할 정도로 집요한 수사를 집중적으로 했을까’라는 반문이다. ‘과거와 달라진 검찰’이 아니라 ‘검찰과 유착해서 검찰권력을 이용하는 친검찰 정권에는 충성하고, 검찰권력에 맞서 검찰을 개혁하려는 정권에는 온 힘을 다해 저항하는’ 모습은 여전히 변함없다는 지적이다. 이제는 검찰권력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어긋나면 정권에도 맞서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현 정부와 여권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진정 ‘역사적인 검찰개혁’을 하겠다면 약점을 잡히지 말았어야 하고, 예상치 못한 약점이 드러났다면 과감하게 읍참마속하면서 개혁의 걸림돌을 제거하고 명분을 굳건히 지키면서 개혁을 완수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약점이 드러난 동료와 측근에 대한 의혹 제기와 검찰 수사를 ‘개혁에 대한 저항’이라고 단정하면 다양한 반대세력이 형성돼 개혁의 동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한 현상이다. 보수야당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치적 이해에 따라 검찰 비난과 검찰 칭찬 사이를 오락가락할 뿐, 국민이 바라는 검찰개혁 법안에는 반대와 방해만 해왔음을 국민은 기억한다.
검찰을 둘러싼 여야의 대립도 계속되고 있다. 미래통합당과 국민의당이 낸 추미애 법무장관 탄핵소추안에 대한 투표가 지난 23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진행되고 있다. 앞서 추 법무장관은 검찰총장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과, 한 검사장과의 유착 의혹을 받는 이동재 전 <채널에이> 기자에 대한 수사에서 검찰총장은 손을 떼라는 내용의 지휘권을 행사했으며, 이에 대해 야당은 지휘권 남용이라며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기소청’외 ‘경찰대상민원조사청’도 1985년 영국에서 초판이 출간된 이래 영국 대학의 형사법 관련 학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경찰학 교과서의 제목은 <경찰의 정치학>(Politics of the Police)이다. 저자 로버트 라이너 교수는 ‘경찰과 치안 정책 및 업무는 태생적이고 필연적으로 정치적’이라고 설파한다. 노동쟁의로 발생한 불법 상황에 언제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 어떤 유형의 범죄에 수사력을 집중할 것인가, 어떤 법 위반은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해 법집행 대신 계도 위주의 정책을 펼 것인가 등등. 이 모든 것이 고도의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을 수반하는 ‘정치’란 것이다. 다만 라이너 교수는 책에서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경찰의 정치화(politicization)’를 막고 피해야 한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경찰을 이용하는 것이 ‘경찰의 정치화’다. 경찰의 정치화에는 필연적으로 경찰 부패가 뒤따른다. 정치권력을 위해서 경찰력을 바쳐 충성을 했으니 그 대가로 최고위 간부들은 임기 연장이나 더 높은 자리를 보장받고, 경찰 조직은 더 많은 권한과 재량을 누리겠다는 ‘보상심리’가 발현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조직 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고, 조직 관리는 느슨해지면서 거리의 일선 경찰관까지 권한과 재량을 남용해 이익을 챙기는 부패가 만연한다. 권력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 속성은 힘없는 국민을 깔보고 군림하려는 정서로 이어지면서 가혹행위 등 인권침해 역시 빈발하게 된다. 영국 경찰은 독점적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지고 ‘절대권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1970~80년대 영국 경찰의 비리사건이 잇따라 터지고, 고문과 가혹행위가 드러나고, 테러사건의 범인 조작 의혹마저 불거졌다. 영국 의회는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려 1년 넘게 진상조사를 벌였고, 법제도 개선과 경찰조직 개혁책을 제시했다. 그 결과 경찰로부터 독립돼 기소와 법정에서의 공소유지를 전담하는 기구인 ‘국립기소청’(Crown Prosecution Service)이 설치돼 ‘수사-기소 분리’ 제도가 도입되었다. 아울러 독립된 경찰감사기구인 ‘경찰 대상 민원조사청’(Independent Police Complaints Authority)도 탄생했다. 각 지방경찰청의 ‘정치화’를 막기 위한 제도도 정비됐다. 지방경찰청장은 작전과 집행의 독립적 전권을 행사하되 인사와 정책 기능은 경찰위원회가 담당하며, 중앙정부는 감독과 지원 기능을 책임지는 ‘3원 체제’가 확립되었다. 시민의 대표인 지방경찰위원회는 주요 정책을 제시하고 감독하는 기능을 하고, 중앙정부는 지방경찰이 지역 정치인이나 토호와 유착하지 않도록 예산과 고위인사 승인권 등을 가진다. 3자가 서로 견제하며 균형을 유지하는 ‘민주적 경찰 거버넌스’를 확립한 것이다. 경찰조직 개혁은 청렴하고 강직한 것으로 유명해서 ‘깨끗한 사람’(Mr. Clean)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로버트 마크 런던 수도경찰청장에게 일임했다. 로버트 마크 청장은 청렴하고 유능한 경찰관들을 선발해서 새로운 감찰조직인 ‘에이(A)10’을 신설하고 대대적인 감찰 작업에 착수했다. 그 결과 수사국장, 광역수사대장 등 고위급 간부들이 형사처벌됐고, 500명의 비리 연루 경찰관들이 사법처리되거나 해임되었다. 오늘날 영국 국민 90% 이상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경찰이 되기까지 영국 경찰이 겪은 개혁의 과정은 혹독했다. 로버트 마크 경은 후에 “개혁은 마치 암 환자의 뇌종양을 제거하는 수술과 같았다. 환자는 살리고 종양은 제거하는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과거 영국 경찰보다 강력한 한국 검찰 지금 대한민국에선 검찰이 1970년대 영국 경찰과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던 영국 경찰은 1986년 국립기소청 설립 이후 기소에는 관여할 수 없다. 우리의 검찰 격인 국립기소청 변호사(우리의 검사)들은 경찰 수사에 개입할 수 없다. 경찰의 요청에 따라 법률자문을 해줄 뿐이며 기소 여부로 경찰 수사에 대한 간접적 통제권을 행사한다. 우리 검찰은 1970년대 영국 경찰보다 더 강력하다. 수사권, 기소권, 공소유지권, 형집행권을 모두 독점한 검찰은 역대 정권과 기본적으로 밀월관계, 때로는 갈등관계를 맺으며 ‘절대권력’이 되었다. 정권은 선거 결과에 따라 바뀌지만 ‘검찰권력은 영원한’ 상황이 유지된 것이다. 검사의 범죄 혐의에 대해서는 수사조차 이루어지지 못했고, 검찰과 친분이 있는 유력 인사와 부자들 역시 치외법권의 특혜를 누려온 의혹이 있다. 삼성이 검사들에게 상품권과 현금 등을 주며 관리한 정황이 국가정보원 도청으로 드러난 소위 ‘삼성 떡값 검사 엑스파일 사건’ 등 의혹은 검찰에 의해 무마됐다. 수사 담당검사는 퇴직 후 재벌을 고객으로 둔 대형 로펌 임원으로 스카우트되곤 했다. 검찰의 수사권을 분산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 형사소송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공수처법)이 통과되면서 겨우 검찰개혁의 첫발을 뗐다. 그런데 영국의 의회나 로버트 마크 경 역할을 해야 할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 법무부와 검찰 수뇌부는 여전히 ‘검찰의 정치화’ 논란에 휘말려 있다. 국가와 국민, 역사와 정의, 진정한 검찰개혁을 이루려면 관련된 고위 공직자들이 모두 자기를 버려야 한다. 자신이나 조직의 힘을 이용해 정치적 혹은 사적 이해를 도모해서는 안 된다. ‘공정한 수사, 기소 그리고 재판’이라는 당연한 권리를 국민께 돌려드리는 일만큼 중요하고 귀한 일을 찾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표창원: 전직 국회의원이자 ‘범죄 프로파일러’인 표창원 박사가 의원으로서 보고 듣고 겪은 사실과 언론과 정부, 대중 등 정치 환경, 정치인 언행의 동기와 의도 등을 종합·분석해 독자들에게 보고한다. 한국 정치의 병리현상을 해부하고, 문제의 원인을 추적해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국민을 위한 국회와 정치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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