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김비씨가 사는 동네인 경남 양산 와이엠시에이(YMCA)에서 지역 청년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는 모습. 양산 와이엠시에이 제공
어제는 조촐한 자리에 강연을 다녀왔다. 내가 사는 양산 지역에서 초대한 자리라 더욱 반가웠다.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사회 초년생들을 위한 인문 강좌라니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지역의 청년들을 만나는 자리라 반가움이 먼저였다. 강연이라는 걸 처음 해본 때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했던 말들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언제나 나는 내가 살아온 삶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며 강연을 진행한다. 왜 그런 방식의 강연을 반복하느냐 지적할 수 있겠지만, ‘살아온 이야기 들려주세요’라고 말했던 누군가의 말에 처음 용기를 내보자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그뿐이기도 했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려는 마음은 욕심일 뿐, 줄이고 줄인 말들이 언제나 가장 빛난다. 지극히 개인적인 삶을 발화하는 일이 강연 자리에 쓸모가 있느냐고 비난하는 분도 있지만, 나는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뿐인데 괜찮으시냐고 먼저 묻는다. 정말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그것밖에 없어서인지, ‘보통 삶’으로 읽히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 그토록 간절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강연 자리에서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웃는 얼굴 지키기가 최선의 ‘구호’ 강연을 여는 말은 언제나 성별이라는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다. 트랜스젠더라는 말의 의미를 모르고 계시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기에, 그 용어의 범위가 생각보다 넓고 여성과 남성 사이에 넘나드는 모두를 아우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드리면, 대부분 조금 갸우뚱하신다. 외부의 시선으로는 나 역시 그 사이의 존재들 중 하나겠지만, 나 또한 다른 트랜스젠더들과 꽤나 먼 거리감을 느낄 때가 적지 않다. 인간으로서 욕망하는 바가 다르고 지향하는 바가 다른 건 당연한데, 비트랜스젠더들에게 트랜스젠더는 오직 하나의 이미지로만 환원된다. 당사자로서 나 역시 나의 정체(?)를 알고 싶어 오래도록 나를 관찰하고 나의 삶을 가늠했지만, 여전히 명쾌한 해답은 찾지 못했다. ‘왜 그렇게 복잡하게 살아요?’ 누군가의 무심한 목소리가 그렇게 말을 건네기도 했던 것 같은데, 타박인지 걱정인지 아주 간단할 수 있는 그들의 삶이 여전히 부러울 따름이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단 한번도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고 고백하면 청중들은 꽤나 놀란다. 오히려 남자가 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말하면, ‘저게 무슨 소리인가?’ 어리둥절해하신다. 1990년대 말부터 이 나라에서 ‘오픈한’ 트랜스젠더로 살아오면서 거듭해야 했던 그 무수히 많은 인터뷰에서 첫 질문은 항상 똑같았다. ‘언제부터 여자가 되고 싶으셨어요?’ 그러면 나는 대답한다. ‘아뇨, 저는 남자가 되고 싶었는데요?’ 들을 준비를 하고 온 사람도, 말할 준비가 된 사람도, 시작부터 어긋나고 만다. 남자가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농구를 하고, 남자아이들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고 말투를 흉내 내던 시절을 강연 자리에서는 우스개처럼 말하지만, 그때의 간절함은 나 혼자만 안다. 남자가 되기는커녕 아줌마 농구 선수가 되었다고 슛 쏘는 폼을 보여드리면, 청중들은 왁자하게 웃음을 터뜨린다. 같이 웃음을 나누는 일만큼 쉽게 동질감을 나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나는 내 삶에 관한 이야기가 과도하게 처연하거나 우울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강연 자리에서는 항상 웃는 얼굴을 지키려고 애쓴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구호’인 셈이다. 청년 시절을 말하며, 나는 주로 내가 지키려 했던 한 인간으로서의 당당함에 관해 말한다. 내가 비록 남들과는 다르게 태어났고 그로 인해 손가락질받으며 살았더라도,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 삶이 부끄럽지 않으며, 외부적인 요인들로 인해 내 삶이 훼손되지 않도록 안간힘을 썼던 일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트랜스젠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나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고, 반대로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들의 귀함을 더욱 뼈저리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누구에게든 진심으로 다가갔을 때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환대해주었던 경험들, 지금은 폐지된 한국방송>의 병원24시>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수술을 진행했을 때 받았던 감격적인 지지와 응원들에 관해 말하며, 나는 그때 직접 전할 수 없었던 감사 인사를 전한다. 스치듯 당신들이 남겨주었던 그 모든 응원의 말들로 혼란과 혼돈 속에 위태로웠던 존재가 이렇게 한 인간으로 성장하고 살아남았다는 소식을, 강연 자리마다 웃으며 되풀이한다. 정말 고마웠다고, 당신들의 지지가 내 삶을 지키고 일으켜주었다고. 다시 또 강연 자리가 우울해질까 나는 다 함께 웃을 수 있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호적정정을 하지 않고 민방위 훈련을 끝까지 다 마친 이야기, 주민등록증을 내밀 때마다 내가 나 자신의 아내 취급을 받았던 이야기, 어디서 개인정보를 훔쳤는지 내 남자 이름을 대며 여자를 소개해주겠다던 웨딩업체 직원과 싸운 이야기까지.
북토크 때 꽃다발 받은 짝지>, 펜드로잉. ♣️H6s박조건형
그렇게 두시간 남짓 청중에게 살아온 이야기를 떠들고 나면, 정말 굿이라도 한판 끝낸 기분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내 앞에 앉아주신 분들의 마음에 닿기 위해 애를 쓰긴 했지만, 이런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이 정말 쓸모 있을까 강연이 끝나면 회의에 빠지기도 한다
. 그래도 어떤 왜곡된 마음에 약간의 균열이라도 낼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며, 그날 내가 목격한 청중의 환한 웃음만을 마음속에 기록한다. ‘아유, 정말 여자 같아요!’ ‘그거… 그거인 줄 정말 몰랐어요!’ 서툴고 모자란 우리의 말들은 여전히 엉뚱한 데를 찌르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들의 진심을 이해한다. 그 정도는 이해해야 한다고 믿는다. 온라인이 아니라 직접 마주해서 어쨌거나 우린 서로 닮은 얼굴임을 어렵지 않게 확인한다. 다행히, 이번 양산 와이엠시에이(YMCA)에서 진행된 강연에서는 어색하게 웃는 서로를 마주하지 않아도 되었다. 젊은 청년들의 눈빛은 반짝였으며, 충분히 호응해주었고 마음을 열어주었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 시간에 어떤 질문이든 해도 좋다고 말씀드리지만 쉽게 질문을 하는 분은 많지 않다. 바깥에서는 성소수자들에게 어떤 질문이든 묻는 것 자체가 대부분 폭력일 수밖에 없지만, 이 자리는 당사자인 내가 허락하는 자리이니 어떤 질문이든 해도 괜찮다고 편안한 자리를 만들어드린다. 이 나이 먹어 이제 쉽게 상처 안 받는다고 눙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강연을 들은 사람들은 매번 질문을 고르실 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다정한 이들의 얼굴만 기억한다 한데 이번 강연 자리에서는 스물 남짓의 한 남성 청년이 손을 번쩍 들어 첫 질문을 했다. 너무도 당당하고 천진난만한 그의 얼굴에 조금 긴장이 되기도 했는데, 그 질문은 ‘선생님, 농구 포지션이 어디예요?’였다. 모두들 같이 웃었고 나도 크게 웃었지만, 그 질문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미 그분께는 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당연하고, 같이 농구를 한 게임 뛰는 존재로 상상하고 있다는 의미일 테니 말이다. 나는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농구를 배웠으니 남자로 치면 키가 큰 편이 아니라, 가드를 보았다고 대답했다. 이따금 포워드를 서기도 했지만 가드가 편했다고 말하고, 기회 되면 같이 농구를 한 게임 하자고 덧붙였다. 강연이 끝나면, 집에 돌아와 가만히 그 시간을 곱씹는다. 다정하고 품 넓은 사람들의 얼굴만을 기억한다. 어딘가 나에게 귀 기울여줄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하는 일만큼 큰 위로가 또 있을까? 오늘도 날마다 우리의 불안은 수치로 환산되고, 불안을 부추기는 혐오는 활자로 찍힌다. 그래도 나는 알고 있다. 나와 같이 울고 웃었던, 강철같이 단단한 당신들의 선한 의지를 나는 똑똑히 기억하며,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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