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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December 4, 2020

이주노동자가 웬 헌법소원이냐고요? : 사회일반 : 사회 : 뉴스 - 한겨레

buahasema.blogspot.com
[토요판] 이란주의 할 말 많은 눈동자
⑫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인 우다야 라이
합법노조 되기까지 10년여 세월
고용허가제 악용한 협박, 돈 갈취
임금체불, 질병에도 회사 못 옮겨

사업장 이동제한은 ‘강제노동’ 법
위헌성 밝히려고 헌법소원 청구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 아닌 노동자
‘고용허가’ 아닌 ‘노동허가’ 할 때

일러스트레이션 순심
일러스트레이션 순심
우다야 라이(53·네팔 출신) 위원장이 속한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을 비롯한 58개 이주인권단체와 52명의 변호사 대리인단은 5명의 이주노동자를 지원하여 지난 3월15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고용허가제가 위헌임을 밝히고자 하는 노력이다. 고용허가제 악용하는 회사들 어떻게 외국에 와서 노조 활동을 하고 더구나 위원장까지 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아요. 차별받은 경험이 나를 이 길로 이끌었다 할까요. 어린 시절에는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한국에 와서 저항하고 싸우는 사람이 됐어요. 직장과 거리에서 받은 멸시와 차별이 견디기 힘들 정도였어요. 한국은 우리를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구나, 슬프고 답답한 속을 친구들과 나눈 적도 많아요. 그러다 결심했죠. 밟히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 다 바꾸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목소리를 내자! 당시 막 시작하던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을 찾아가서 조합원이 됐어요. 나보다 앞서 위원장을 했던 이들은 강제추방당하거나 출국했다가 재입국을 거부당했어요. 한국 정부가 우리 활동을 막기 위해 콕 찍어 강제추방하거나 비자를 안 준 거죠. 그런 탄압 속에서도 이주노조는 2005년 노동조합 설립 신고를 했는데, 미등록노동자(유효한 체류자격이 없는 노동자)는 노동 3권의 주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반려됐어요. 결국 대법원에서 ‘취업 자격이 없는 외국인도 노조법에서 규정하는 근로자의 범위에 포함되므로 자유롭게 노조 결성 및 가입을 할 수 있다’는 판결을 받아내서 설립필증을 받았습니다. 법외노조에서 합법적 노조가 되기까지 10년4개월 걸렸어요. 우리는 조합원들을 교육하고 조직하며 노동문제를 지원합니다. 조합원 중에 고용허가제 노동자가 많아요. 대부분 힘들게 견디고들 있어서 참 안타깝습니다. 간혹 노조에 항의하기도 해요. 노조가 그런 것도 못 해? 노조가 왜 아무것도 안 해주는 거야! 하지만 고용허가제라는 제도가 노동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내용이 많아서 아무리 개별 사례를 가지고 싸워도 소용이 없어요. 조합원들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더 단결해야 한다고, 더 싸워야 한다고, 그래야 권리를 얻을 수 있다고. 고용허가제의 가장 큰 문제는 노동자가 회사를 옮기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겁니다. 고용주가 계약을 해지해줘야만 노동자가 회사를 떠나 다른 회사를 찾을 수 있다니, 말도 안 되죠. 이를 악용해서, 풀어줄 테니 100만원 가져와라, 200만원 가져와라 하는 사장도 많습니다. 돈을 갈취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아요. 이주노동자와 직접 관련이 없는 시민 입장에서 이런 상황을 다 알기는 어렵지요.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강제노동 피해 증언대회’를 통해 발표했던 사례를 몇 가지 들어볼게요. 어이없는 이야기에 너무 놀라지 마시기를. ㄱ이 일하던 가죽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서 동료 중 2명이 사망하고 8명이 크게 다쳤어요. 기적처럼 생존한 ㄱ은 동료가 죽어나간 현장에서 먹고 자며 일해야 하는 상황이 큰 고통이었습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와 화학약품으로 인한 종양을 치료받으며 죽음과 같은 노동을 견뎌야 했어요. ㄱ은 회사를 옮기게 해달라고 사장에게 애원했지만 거절당했어요. 채소 재배 농장에서 6년 일한 ㄴ은 주로 농약 살포 일을 맡았어요. 농약이 너무 독해서 견딜 수 없어서 그만두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농장 주인은 욕하고 협박했어요. 워낙 소처럼 일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악착같이 붙잡았더군요. ㄴ은 매일 걱정했어요. 농약중독으로 사지가 마비되면 어쩌나, 불임이 되면 어쩌나, 갑자기 죽으면 어쩌나. 아니나 다를까,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니 무정자증이라고 합니다. 고용허가제가 ㄴ을 불임으로 만든 겁니다. 용접일을 하는 ㄷ은 용접가스 때문에 만성비염이 생겼어요. 비염이 심해져 호흡이 어려울 지경이 되자 사장에게 회사를 그만두게 해달라고 요청했어요. 사장은 1년만 채우라고 하더니, 막상 1년이 되니 3년 계약을 다 채우라고 협박했어요. 3년을 채워 열심히 일하겠다는 서약서를 내밀며 서명하라고 요구했어요. ㄷ이 거절하니까 깡패 시켜 죽이겠다, 묻어버리겠다고 위협했죠. 코로나 환자로 몰아 창고에 가두기도 했어요. ㄷ은 경찰에 도와달라고 신고했지만 이들은 사장님의 거짓말을 더 믿었습니다. ㄷ은 욕설과 폭행, 감금, 협박 등 상상도 못할 많은 일을 겪으며 고용노동부에 사업장 변경을 요청했지만 계속 외면당했습니다. ‘노예노동’ 현실 두고 심리치료라니 왜 어이없다는 말로 시작했는지 이제 공감이 되시는지요? 이런 사례는 빙산의 일각입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마음 아픈 일은, 일 때문에 건강이 나빠지는데 입증하기 어려운 사례가 너무 많다는 겁니다. 고용허가제 노동자의 의사는 사장님입니다. 사장님이 아프다고 인정해주면 아픈 거고, 인정을 안 해주면 안 아픈 거예요. 병원 진단서 같은 것은 아무 소용이 없어요. 용접 노동자가 질 나쁜 보안경을 쓰고 계속 일을 하니 눈이 아프고 잘 안 보인대요. 사장은 거짓말하지 마라, 월급 많이 주는 회사로 가려고 네가 수 쓰는 거지, 병원 가 봤자 소용없어라고 합니다. 이 노동자는 영원히 눈이 안 보일까 봐 걱정이 태산입니다. 고추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고추꽃·농약 알레르기로 고통받았어요. 사장님은 엄살떨지 마라, 참으면 괜찮아진다 하면서 의사 노릇을 해요. 노동자는 몸이 붓고 가렵고 아파 죽을 지경이죠. 사고는 눈에 보이니까 차라리 나을지도 몰라요. 서서히 깊어지는 고통, 입증하기 어렵고 사장이 인정하지 않는 직업병,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는 고통을 이주노동자들이 외롭게 견디고 있어요. 요즘 이주노동자의 자살이 늘어나는 것도 이런 환경이 작용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에서는 자살예방교육이나 심리치료를 유일한 해법인 듯 내놓던데, 동의하기 어려워요. 절망스러운 환경을 그냥 놔둔 채 교육하고 심리치료한다고 자살 문제가 해결되겠느냔 말입니다. 이런 상황을 살피다 보면 깊은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한국이 고용허가제 노동자에게 장기노동이나 정주를 허용하지 않고 단기순환제로 운영하는 것은 유해 환경 속에 장시간·고강도 노동을 시킨 뒤에 직업병이 채 드러나기 전에 내쫓으려는 작전은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문 말입니다. 이처럼 다 열거할 수도 없는 사건 하나하나를 개별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전국 58개 이주인권단체와 52명의 변호사 대리인단은 고용허가제 노동자 5명을 지원하여 헌법소원을 청구했어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을 제한하여 ‘강제노동’을 시키고 있는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법률)과 ‘고용노동부 고시 제2019-39호’(이하 고시)의 위헌성을 밝히려는 겁니다. 법률 25조는 사용자의 근로계약 해지와 만료 후 갱신 거절 시, 사업장이 휴·폐업하거나 고용허가가 취소된 경우, 사용자의 근로조건 위반이 있을 때만 외국인근로자가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고시는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업장 변경 사유’를 정하고 있어요. 애초 특정 사유가 있을 때만 회사를 옮길 수 있다고 정해 놓은 것 자체가 문제이니 이런저런 사유를 고시에 늘어놔 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 헌법소원에 청구인으로 참여한 5명의 사유는 이렇습니다. ㄹ은 임금을 제대로 못 받았고, ㅁ은 사용자가 무면허로 지게차를 운전하라고 요구해서 다른 직무를 요청하니 출신국으로 돌려보내겠다고 협박했습니다. ㅂ은 근로기준법에 금지된 위약금 명목으로 사용자가 300만원을 갈취하려 들었고, ㅅ은 유해한 유기용제를 다루다 산재를 당했음에도 보호장구 지급 요구를 거절당했고, ㅇ은 중대 산재 사고로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도 같은 회사에서 계속 일해야 했습니다. 누구라도 일을 계속하고 싶지 않을 만한 상황입니다만, 법률과 고시에 나열된 ‘변경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용노동부는 이 노동자들을 내쳤고, 사용자는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사실상 ‘노예노동’, ‘강제노동’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외국인 또한 기본권의 주체 일부 한국인들은 말합니다. 그걸 알고 계약하고 온 거 아니냐고, 직접 서명한 것이니 지켜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아, 그렇지 않아요. 한국어 시험에 붙고 계약할 날만 기다리고 있는 이주노동자로서 이것저것 따져가면서 계약을 하고 안 하고를 선택할 수가 없어요. 회사에 대한 정확한 정보 같은 것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냥 서명을 해야 합니다. 왜냐고요? 서명 안 하면 아예 못 오니까요. 한마디로 공정하지 않은 계약이므로 이주노동자에게 무조건 지키라고 강요해서는 곤란합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좋은 것을 꿈꾸며 한국에 옵니다. 한국이 자기를 이렇게 궁지에 몰아넣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말입니다. 헌법소원을 준비한 우리는 헌법 제10조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제11조의 평등권, 제12조 제1항의 신체의 자유와 강제노동 금지, 제15조의 직업선택의 자유, 제32조의 근로의 권리를 고용허가제가 위반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헌법상의 권리는 국민만 누릴 수 있는 것 아니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 국제법이 국적과 관계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인권 항목을 정하고 있고, 한국의 헌법재판소도 이미 여러 차례 외국인 또한 기본권의 주체라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이주노동자는 일회용품이 아닙니다. 젊은 사람 데려와서 최대한 착취하고 버리고 또 새로운 사람 데려오는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이주노동자가 장기적으로 일하며 한국에도 기여하고 자기 미래도 계획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가족 동반과 영주도 허용해야죠. 이번 헌법소원이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변경 불허가 위헌이라는 것을 밝히는 데 초점을 두고 있지만, 우리는 더 근본적인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고용주에게 고용허가’가 아니라 ‘이주노동자에게 노동허가’를 해줘야 한다고 우리 이주노조는 생각합니다. 혹시 놀랐습니까? 이주노동자가 너무 무리한 것을 원한다고.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고용허가제의 특례 적용을 받는 동포노동자 18만명이 그런 제도 속에서 일하고 있거든요. ‘H-2’(외국국적동포 고용허가제 특례고용) 비자를 가진 동포노동자들은 한국에 입국해서 취업교육을 받은 후 고용센터에 구직 신청을 하고 ‘특례고용가능확인서’를 받은 회사 중에 골라서 취업할 수 있습니다. 일 시작하고 14일 이내에 정부에 취업신고를 하면 취업 절차가 마무리되고,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로 옮기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이 같은 방식을 ‘E-9’(고용허가제 일반) 비자를 가진 24만명의 이주노동자에게도 적용하자는 것이니 무리한 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주노동자 24만명을 족쇄로 묶어두고 일 시켜 얻는 부끄러운 이익보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추구해서 얻는 공정한 이익이 더 클 것이라고 우리 이주노조는 주장합니다.
▶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일꾼. 국경을 넘어와 새 삶을 꾸리고 있는 이주민들은 저마다 깊은 사연이 있다. 떠나온 사회와 살아내야 할 사회에 하고픈 말이 많지만 그 말은 발화되지 못한 채 눈동자에 잠기곤 한다. 그 이야기를 풀어내 당사자 시점으로 전한다. 4주에 한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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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05, 2020 at 07:04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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