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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August 29, 2020

회사에는 방향성을 보는 노련한 조연도 필요합니다 - 한겨레

buahasema.blogspot.com
[토요판] 이병남의 보내지 못한 이메일
⑧정년퇴직이 멀지 않은 그대에게

밀려나는 느낌의 중장년 직장인
회사서 스스로 미션 찾고 도와야
일의 스피드만큼 방향성도 중요

방향성 판단하고 후배들 코칭하는
조연 역할 잘하느냐로 평가해야
주연·조연의 조화는 일에도 필요해

나이를 먹는다고 무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험을 하면서 젊었을 때보다 종합적인 판단력이 커지는데 회사가 이런 능력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나이를 먹는다고 무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험을 하면서 젊었을 때보다 종합적인 판단력이 커지는데 회사가 이런 능력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Q. “정년퇴직을 8년 앞두고 있습니다. 직장생활을 30년 가까이 만족하며 해왔고, 몇몇 중책도 맡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승진할 가능성이 없는데다 정보기술에 능하지 않아 일 처리 속도가 느립니다. 후배들이 선배들을 ‘점오(0.5) 직장인’(일을 0.5인분만 한다는 의미)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데 상처를 받습니다. 열심히 달려왔는데, 이렇게 정년만 기다려야 하나 참으로 헛헛합니다.” 저는 만으로 40살에 미국에서 대학교수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해 회사 임원으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5년간을 대기업 그룹연수원에서 일하고 45살에 그룹인사팀장으로 보임을 받았습니다. 매년 연말 사장을 지내거나 부회장까지 지낸 분들이 퇴임하게 되면 인사팀장인 제가 찾아뵙고 퇴임 관련 실무 사항들을 상의드리곤 했습니다. ‘그간 참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이제 좀 여유롭게 지내실 수 있으니 축하드립니다’ 등 인사를 건네면 거의 예외 없이 아쉬워하고 서운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저 연세에 저 지위까지 성취하신 분이신데 왜 그러실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분들은 아직 능력이 있는데 밀려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은퇴는 내가 정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룹 인사팀장, 부사장을 8년간 하고 사장 승진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주회사를 떠나 그룹 차원의 연수원인 인화원장으로 부임했습니다. 정말 기쁘고 감사한 일이었지만 묘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룹인사팀장 때는 일이 있으면 계열사 사장, 부회장들을 아무 때나 만날 수 있었고, 그들도 내 말에 늘 귀 기울였지요. 그런데 막상 사장 승진을 했음에도 인화원장으로 간 뒤에는 뭔가 전과 같지 않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사람들이 저를 지주회사의 파워포지션에 있는 사람으로 대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아무튼 사람들의 태도는 나라는 한 인간 자체에 대한 것이었다기보다는 내가 맡았던 일, 그 자리 때문이었겠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 자신과 내가 맡은 자리를 혼돈하면 안 되겠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속도 중시 사회에서 자리 찾기 약간 의기소침하게 지내면서 어떻게 일할 것인가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 인화원장으로서의 나의 새로운 미션은 사업 맡은 다른 사장들이 성공하도록 도와주는 것이구나!’ ‘우선 그 생각을 마음에 품고 가슴에서 더욱 키우면 그들에게도 그 기운이 전달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더 이상 나를 경계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마음 편하게 도움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 이런 깨달음이 오자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면서 온몸에서 에너지가 차올라 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온갖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인화원 교육의 프레임과 모델과 콘텐츠를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 나갔습니다. 교육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사업 성공에 기여하는 교육, 당장 써먹기 위한 기능교육이 아니라 깊이 생각하고 성찰하여 깨달음을 주는 교육으로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러면서 인화원 조직 구성원들은 기업교육전문가에서 각 회사 사업책임자들의 비즈니스 파트너로 성장해 나갔습니다. 뭔가 밀려난다는 생각이 들 때, 다시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미션을 새로이 찾을 수 있으면, 맡은 일을 새로이 정의할 수 있으면, 나만의 성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30년 가까이 일을 해온 직장에서 현실적으로 임원 승진은 어렵고 후배들에게는 ‘0.5 직장인’이라는 취급을 당하면서 상처받으며 몇년 뒤 정년을 기다리는 회사생활은 참 힘들지요. 특히 한국에서는 축적된 경험이나 경륜보다는 속도를 중시하기에 나이 든 직장인들이 설 자리가 많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선배의 고충을 좀 알아주었으면 좋겠는데 단지 게으르다고 눈총 주는 후배들이 참 야속합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나 자신도 젊었을 때는 그런 자세를 취했던 것 같습니다. 한편 회사원 모두가 사장이나 임원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니 나이 든 고참 사원이나 부장이 있게 마련인데, 이들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그냥 ‘0.5 직장인’일 뿐인가요? 저도 40살 대학에서 회사로 처음 왔을 때 정보기술의 활용 면에서 누구보다도 뛰어났지요. 그러나 갈수록 정보통신기술(ICT)을 다루는 기술은 젊은 세대에게 뒤처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실은 이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스피드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조직에 스피드만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실은 스피드보다는 방향성이 더 중요합니다. 스피드는 겉으로 보이지만 방향성은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잘 안 보입니다. 예컨대 엉뚱한 방향으로 엄청난 스피드로 달려가면 나중에 수정하기가 더 어려워지지요. 나이를 먹는다고 무능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좀 느려졌다고 해서 게을러진 것은 아닙니다. 많은 경험을 하면서 젊었을 때보다 종합적인 판단력이 커집니다. 영화 <인턴>에서 젊은 시이오 앤 해서웨이와 은퇴 후 인턴을 하는 로버트 드니로의 상호보완 역할이 생각납니다. 현실에서 스피드가 성패를 가르는 일이 많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주연이 되고 나이 든 사람들은 조연으로 역할을 바꾸어 나가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조연 없이는 주연이 빛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카데미상에 주연상만 아니라 반드시 조연상이 있지요. 조직 안에서 조연의 중요성을 인식했으면 좋겠습니다. 스피드만으로 유능함과 무능함을 판단하지 말고 주연은 주연으로서 유능한지, 조연은 조연으로서 유능한지를 판단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고참 멤버들이 젊은 후배들과 같은 기준으로 경쟁하도록 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잘할 수 있는 일들이 있는데 그걸 놓치는 것이니 조직 차원에서 큰 손실이지요. 또 조연인 선배는 주연인 후배를 돕고 지원하고 코칭하는 일에서 보람을 느껴야 합니다. 회사는 선배들이 자신의 몫을 찾아나가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제가 인화원장으로 있을 때 고참급 부장들을 위한 그룹 차원의 교육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화원의 기본 교육은 각 직급으로 승진하기 전 사전 필수교육 이수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임원이 되지 못하는 대다수 부장들은 인화원 교육을 7~8년 이상 못 받고 있는 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고 자신의 정체성과 회사의 공유가치도 잊기 쉽습니다. 그래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50대 이후 중장년층의 새로운 인생 설계를 돕는 서울시 50플러스 중부 캠퍼스 인생학교 입학식의 모습. 정용일 &lt;한겨레21&gt; 기자 yongil@hani.co.kr
50대 이후 중장년층의 새로운 인생 설계를 돕는 서울시 50플러스 중부 캠퍼스 인생학교 입학식의 모습. 정용일 <한겨레21> 기자 yongil@hani.co.kr
‘아 회사가 나에게 관심이 있구나’ 이 프로그램은 노하우(know-how)나 노왓(know-what)보다는 노와이(know-why)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즉, 직무에 직접 관련된 기능이나 지식보다는 자기성찰(self-reflection)에 초점을 두고 자신의 일과 자기 자신 그리고 조직의 의미를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돕는 내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교육 첫날, 오후에 인화원에 모인 50여명의 참가자는 대체로 지치고 가라앉은 모습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다수 참가자들은 이 교육과정이 시험을 보고 평가해서 희망퇴직 리스트를 작성하는 목적으로 운영되는 것인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날 식당에서 이들을 지켜보니 표정이 매우 밝게 바뀌어 있었습니다. 즉, 평가하기 위해 하는 교육이 아니라 회사의 공유가치를 중심으로 스스로의 삶과 일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격려 과정이란 것을 알게 된 결과였습니다. ‘아 회사가 나에게 관심이 있구나’ 하게 된 것이지요. 은퇴를 앞두고 회사에서 마무리 미션을 찾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정년을 내가 정하고 그 결승점까지 스스로의 역할을 찾아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당신에게 남은 몫입니다. 그런데 실은 그렇게 준비하고 다짐하고 회사를 떠난 뒤 또 찾아오는 공허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과제인데, 그 얘기를 할 다음 기회가 오겠지요. 오늘은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는 당신을 응원하는 것까지가 저의 미션입니다!
▶ 이병남.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조지아주립대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다 1995년 엘지(LG)그룹 임원으로 입사해 인사, 교육, 노사관계 및 지배구조 업무를 맡았다. 2008년 사장 승진하면서 인화원장으로 부임해 8년간 원장직을 수행하고 2016년 퇴임. 인간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지만 이를 풀어낼 해법 역시 인간에게서 비롯된다는 그의 경영 철학은 저서 <경영은 사람이다>(2014)에 담겼다. 인간존중이라는 경영의 본질을 잊지 않고 21년간 숨 가쁘게 현장을 누벼온 그가 일터에서 겪는 우리의 고민을 함께 나눈다. 4주에 한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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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9, 2020 at 02:17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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