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이병남의 보내지 못한 이메일
⑨ ‘코로나 불안’으로 퇴사를 고민한다면
⑨ ‘코로나 불안’으로 퇴사를 고민한다면
위기 상황일수록 정보공유 필수
그렇지 않으면 변화·개혁 당위성
공감대 확보 어렵고 혁신도 실패
참 불안하고 어려운 시기지만
한 조직서 성공 체험 중요하고
그 과정서 자기 통제감 얻게 돼
참으로 어려운 시기입니다. ‘코로나 위기를 계기로 내게 맞는 새 일을 찾아야 하나’ 고민이 들더라도 가능하다면 ‘지금 그곳’에서 성공 체험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대담하다” 엘지(LG)는 수익성이 좋았던 엘리베이터 사업 등을 매각하고 반도체 사업을 포기했으며, 주력회사들의 지분 상당 부분을 해외기업에 넘기는 방식으로 현금을 확보했습니다. 매각한 회사 구성원들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고용보장을 확보했지만 막상 떠나가야 하는 그들은 불안감 속에서 시설점거와 파업 등으로 배신감과 분노를 표출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해 연말 임원 인사의 기조는 “탁월하지 않으면 퇴임”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30% 이상의 임원들이 회사를 떠나야 했습니다. 남은 임원들도 급여의 30%를 반납했습니다. 일반 직원들의 인원 감축은 최소한으로 하고 급여 수준도 유지했습니다. 그해 겨울, 엘지인화원에서는 ‘비상경영세미나’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약 두달 동안 그룹 최고 경영진 이하 전 임원들이 당시 엘지가 처한 사업적, 재무적, 조직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며 타개책을 제시하고 향후 방향성을 공유했습니다. 몇명만 알면 오해가 생기고 루머가 조직의 에너지를 갉아먹습니다. 위기 상황일수록 구성원들과의 정보 공유가 필수적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변화와 개혁의 당위성에 대한 공감대를 확보하기 어렵고 실행력 미비로 혁신은 실패하게 됩니다. 이렇게 엘지는 정보 공유와 뼈를 깎는 실행을 통해서 5대 그룹 중 유일하게 공적 자금을 한푼도 안 쓰고 자체 힘으로만 외환위기를 극복한 기업집단이 되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10년 만인 2008년에도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세계가 고통을 겪었습니다. 엘지의 경우 2003년에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기 때문에 자회사 간에 일종의 방화벽이 쳐져 있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처럼 그룹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각 사업 자회사 차원에서는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모든 회사에서 임원들의 급여 반납이 있었는데 그중 에이(A)회사의 경우 사업이 아주 심각한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은 다른 계열사보다 훨씬 많은 급여를 반납하면서 직원들의 급여는 그대로 유지하고 최소 1년간은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직원들은 헌신적으로 일했고, 특히 연구개발 부문에서는 다음번 활황기를 대비한 새로운 공정을 개발했습니다. 이것이 주효해서 결국 2년 안에 회사는 완전히 정상적인 모습으로 회복되었습니다. 불황기에 하는 인력 구조조정은 많은 부작용을 낳습니다. 특히 사회 안전망이 미비한 상태에서 단행되는 해고는 개인과 지역사회에 엄청난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잘리면 끝’이라는 절박감이 직원들로 하여금 극한 투쟁까지 하게 만듭니다. 국가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북유럽에서처럼 평소 급여의 70~80% 정도를 실업급여로 받을 수 있으면 상대적으로 심리적 안정감과 더불어 새로운 취업이나 창업 시도를 좀 더 쉽게 할 수 있게 될 것이며 극단적인 투쟁의 필요도 줄어들 것입니다. 스웨덴은 이미 오래전부터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대담할 수 있다’라는 캐치프레이즈하에 이노베이션을 촉진하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합니다. 아직 그런 여건을 갖추지 못한 우리나라의 경우, 각 회사들이 평소에 늘 인력의 인플로(in-flow)와 아웃플로(out-flow)를 관리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퇴직하는 사람들이 늘 있고 또 입사하는 사람이 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일에 대한 능력과 성과를 일상적으로 평가하고 피드백함으로써 개인과 회사의 윈윈을 상시적으로 확보해 나가야 합니다. 불가피하게 희망퇴직제도를 운영한다면 회사 성과가 좋을 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나가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더 잘해줄 수 있고 나가는 사람도 상처가 적을 수 있습니다. ________________
외환위기 때보다 심각한 지금이지만 지금 코로나19로 인한 사회 경제적 위기는 1997년보다 심각한 것 같습니다. 외환위기 때는 적어도 무엇을 해야 한다는 처방은 있었습니다. 당시 전세계 시장을 보면 동남아와 한국 외에 남미, 북미, 중동, 유럽 등의 경제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10여년간 전세계가 자본주의적 단일 경제권이 되다시피 하고 동시적 불황에 접어들면서 그 어떤 시장에서도 활기를 찾기가 어려워져 버렸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덮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전지구적 전염병이 되어서 그 어디에도 안전한 나라가 없게 되었습니다. 전세계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케이(K)방역’이라는 말로 세계적으로 존중을 받게 된 건 방역과 경제의 균형을 잘 잡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과거 우리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루어낸 저력에서 나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이제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서서 지구 환경과 자연에 대한 생태적 관점을 갖지 않으면 방역도 성장도 담보할 수 없는 시대가 온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과연 정부나 기업, 그리고 시민과 소비자가 과거 산업화, 민주화에 쏟았던 열정으로 이러한 생태적 가치에 투신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시기입니다. ‘오히려 이 위기를 계기로 내게 맞는 새 일을 찾아봐야 하나’ 고민한다고 하셨지요? 예, 설혹 다른 회사에 가게 된다 하더라도 그곳이 지금 직장보다 더 나으리라는 보장은 없지요. 한 조직에 들어왔으면, 그곳에서 성공 체험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포기한 채 떠나가면 어디를 가든 어려움이 닥쳤을 때 스스로 길을 찾기가 힘들 것입니다.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마주하지 않고 회피만 하면 결코 성공의 체험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내 도전은 내 인생에서 실패로 기록되지 않을까, 앞으로 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나는 극복할 수 있을까, 버틸 수 있을까, 혹은 포기했던 경험이 내 발목을 잡는 건 아닐까?’ 예, 그렇습니다. 일단 성공 체험을 하면 자기통제감이 커집니다. 자신이 어쩔 수 없는 환경이나 여건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큰 희열을 맛볼 것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잘 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내게 맞는 일이 무엇인지 좀 더 명확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저는 포기보다는 실패가 낫다고 생각합니다. 실패의 경험에서 반드시 배우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어려움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습니다. 평탄한 삶, 그것이 좋아 보이지만 그건 성장할 수 없는 삶이며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지해 있다는 것이고 실상은 퇴행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생애주기에 따라서 성장의 양상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나간 세대인 저 자신도 과거와는 또 다른 어떤 면에서 계속 성장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 이병남.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조지아주립대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다 1995년 엘지(LG)그룹 임원으로 입사해 인사, 교육, 노사관계 및 지배구조 업무를 맡았다. 2008년 사장 승진하면서 인화원장으로 부임해 8년간 원장직을 수행하고 2016년 퇴임. 인간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지만 이를 풀어낼 해법 역시 인간에게서 비롯된다는 그의 경영 철학은 저서 <경영은 사람이다>(2014)에 담겼다. 인간존중이라는 경영의 본질을 잊지 않고 21년간 숨 가쁘게 현장을 누벼온 그가 일터에서 겪는 우리의 고민을 함께 나눈다. 4주에 한번 연재.
September 19, 2020 at 07:03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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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고 떠나기보다 실패하는 것이 낫습니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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